-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하나의 성이 유일한 섬처럼 보였다. 도쿄에서 찾아간 ‘츠타야 티사이트’의 첫인상이었다. 길 건너편에서 처음 마주한 츠타야 티사이트는 하나의 성과 같이 위풍당당했다. 동시에 그 강렬한 모습에 주변 풍경이 시야에서 사라져 츠타야 티사이트가 길 위의 유일한 섬처럼 느껴졌다. 길 건너편에서는 조명의 힘이 만든 착각인지 혹은 운명적 순간이 연출하는 환상인지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츠타야 티사이트에 들어서자마자 인생의 결정적 만남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죽기 전에 이런 공간을 하나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서울로 돌아와 스터디를 하기 시작했다. 츠타야 티사이트와 그 공간을 만든 ‘마스다 무네아키’ 그리고 그곳을 운영하는 회사인 ‘CCC(Culture Convenience Club)’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지금이야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이런저런 정보가 많아졌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서울에서 츠타야 티사이트와 관련된 정보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때마침, 스터디를 시작한 바로 다음 날 츠타야 티사이트에 대한 스토리가 담긴 <라이프스타일을 팔다>라는 번역서가 출간되었다. 이 또한 운명일 거라는 자기 최면을 걸었다. 그러고는 책이 배송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퇴근 후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사서 읽었다.
책에는 주옥같은 인사이트가 넘쳐났다. 그중에서도 마스다 무네아키의 창업 계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회사에서 신사업을 기획하는 업무를 담당했었는데, 기획안이 사업화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사장되었다고 말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기획안이 승인권자들 이해의 범위 내에 있으면 이미 세상에 있다고 치부하며 사업화하지 않고, 이해의 범위 밖에 있으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승인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 속에서 그는 상상을 사업화하기가 요원할 거라고 봤다. 그래서 그는 머릿속에 있던 기획을 구현하기 위해 1983년에 츠타야를 직접 오픈했다. 그렇게 시작해 30여 년 동안 사업을 키운 후 2011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가 사업 초기 단계에서부터 상상해 왔던 공간인 츠타야 티사이트를 세상에 선보일 수 있었다.
그의 경험담에서 나의 현재가 겹쳐 보였다. 회사 생활이 싫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에 새로운 결과물을 선보이고 싶어 하는 기획자로서 갈증이 있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내놓은 기획안들이 마스다 무네아키가 언급했던 것과 유사한 이유로 번번이 흐지부지되는 일들을 경험했기에 그의 설명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30여 년 전 오사카에서 겪었던 일이 지금의 서울에서도 겪는 일이니,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대기업을 다니면서 새로운 기획을 구현하는 일은 쉽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츠타야 티사이트 같은 공간을 만들려면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츠타야처럼 성공한 기업도 30여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으니 말이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승부수를 띄워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여행 콘텐츠 기획사 ‘트래블코드’를 창업했다. 그러고는 첫 번째 여행 콘텐츠인 <퇴사준비생의 도쿄>를 시작으로 <퇴사준비생의 런던>, <퇴사준비생의 교토>, <오프라인의 모험> 등의 책과 여행에서 찾은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소개하는 온라인 콘텐츠 구독 서비스인 ‘시티호퍼스’를 세상에 내놓았고, 책과 시티호퍼스에서 소개한 콘텐츠를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여행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누구나, 언젠가, 한 번쯤 여행에서 미래를 만난다. 그 미래에 다가설지 말지는 각자의 몫이다. 돌이켜보면 도쿄 여행 중에 만났던 츠타야 티사이트가 인생에서 중대한 결정을 하는 계기가 됐다. 죽기 전에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무모한 바람으로 시작했지만, 상상을 구현하기까지의 과정에 구체적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리감에 괴로워하진 않는다. 비즈니스를 성장시키는 과정이 끝말잇기와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면 그다음 결과물에 대한 실마리가 보이고, 그렇게 결과물들을 이어가다 보면 언젠가 표현하고 싶은 마지막 말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그 미지의 여정에서 또 다른 결정적 순간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1980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저서로는 <퇴사준비생의 도쿄>,<퇴사준비생의 도쿄2>,<퇴사준비생의 교토>,<퇴사준비생의 런던>,<뭘 할지는 모르지만 아무거나 하긴 싫어>(세종도서 선정, 2019), <생각이 기다리는 여행>,<오프라인의 모험>(세종도서 선정, 2021) 등. CJ E&M, 올리버 와이만을 거쳐 現 트래블코드 대표.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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