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오후의 그림카페 _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_ 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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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어느 오후의 그림카페 _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_ 재희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어느 오후의 그림카페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재희, 일러스트레이터

 

하늘을 잘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미술학원에 처음 가기 전날 했던 생각이다. 하늘과 구름을 보고 있자면 꼭 저 너머에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고, 그 생각은 나의 초등학교 등굣길을 심심하지 않게 해주었다.

 

얼핏 보면 푸르고 비가 오면 먹구름 끼고 저녁이 되면 노을 지고, 똑같아 보여도 하늘은 똑같은 구석이 없다. 새벽 530분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기 위해 버스 첫 차를 타러 나간다. 이 시간 겨울에는 가로등이 켜지고 사람들로 가득하던 거리는 나밖에 없어 더 추운 것 같지만, 여름에는 일출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여름답지 않게 선선한 공기와 핑크빛 하늘을 보면 잠을 몇 시간 못 잤어도 기분이 좋아지고 괜히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

 

같은 하늘을 바라보더라도 내가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 달리 보인다.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낸 날,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는 날에 바라보는 노을은 잠시 핸드폰을 꺼내 사진으로 남겨놓는 여유마저 부릴 수 있게 해준다.

그렇지만 핸드폰을 꺼낼 여유도, 방금 들었던 노래를 다시 듣기 위해 버튼을 누를 기력도 없는 날에는 그저 넋을 놓고 바라볼 뿐이다. 말라가고 있는 나와 달리 아름답게 저물어 가는 노을이 얄밉기도 하다. 그래도 힘든 날 바라보던 하늘은 더 잊히지 않는다. 내게는 절대 잊히지 않을 하늘이 하나 있다.

 

예술고등학교에 합격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나의 고등학교 1학년은 그다지 좋은 추억이 아니었다. 1년 동안 그림을 미워하고 사이가 멀어지게 됐고, 과제가 아니면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됐다.

2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는 3, 겨울방학 내내 마음속에만 품고 있던 생각을 현실로 옮길 때가 왔다. 집 앞에 인문계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려고 했다. 나는 원래 충동적이고 마음먹은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지 않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련이라도 남았는지 전학은 그리 속도감 있게 진행되지 않았다.

 

이도 저도 아니게 된 나는 이제 막 대학생이 된 누나의 기숙사 짐을 옮기러 같이 가자는 부모님의 부탁을 거절할 핑계가 없었다. 누나의 학교는 우리 집 앞에 있던 대학교보다 엄청 넓고 언덕이 무척 높았던 것 같고, 학교 앞에서 가족들과 닭볶음탕을 먹었는지 해물칼국수를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봤던 하늘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의 노을을 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날 미술학원에 처음 가기 전날, 하늘을 잘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금 떠올랐고 결국 전학은 가지 않았다.

 

아마도 그날 가기 싫었던 기숙사에 가지 않았다면, 그때 창밖에 있는 노을을 보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어떤 사람이 될지 모른다. 그림을 계속 그릴 수도, 어쩌면 상관없는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날 본 노을이 아직도 기억나듯, 나의 그림도 누군가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기억되고 싶다. 그렇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내가 그랬듯이 누군가에게는 다짐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용기를 주고 싶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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