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환경운동가, 제인 구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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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환경운동가, 제인 구달
  • 출판사동아일보사
  • 잡지명여성동아

일곱 살 시절 꿈을 이룬 소녀

구달은 어려서부터 동물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개나 말처럼 동네에서 만날 수 있는 온갖 동물과 어울리는 게 좋았다. 어머니가 도서관에서 빌려다 준 ‘둘리틀 박사 이야기’를 읽었다. 동물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둘리틀 박사가 아프리카에서 갖은 모험을 하는 이야기다. 구달은 아프리카로 가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일곱 살 때였다.

열여덟 살, 고등학교를 졸업한 구달은 동물을 관찰하고 동물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1950년대 당시 사람들은 젊은 여자가 집을 떠나 야생동물을 관찰하러 간다는 건 무모하다고 했다. 구달은 비서 자격증을 따고 병원에서, 옥스퍼드대에서, 영화제작소에서 일했다. 꿈은 매우 멀어 보였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구달은 아프리카 케냐로 가게 됐다. 오랫동안 꿈꾸던 둘리틀 박사의 아프리카였다. 구달은 동물에 관심이 있으면 인류학자이자 고생물학자인 루이스 리키 박사를 만나라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가 비서로 일하게 됐다.
 

얼마 후 리키는 구달에게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침팬지들의 생활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연구직을 제안했다. 경험도, 학위도 없었지만 아프리카에서 동물들과 함께 지내고 싶다는 그의 꿈에 딱 맞는 일이었다. 당시 이 지역을 지배하던 영국 정부 관리들은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혼자 탄자니아로 향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구달의 어머니가 동행하는 조건으로 연구 허가가 떨어졌다. 난관을 헤치고 구달은 탄자니아에 있는 곰베강 야생동물보호구역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새삼 구달의 용기에 감탄하게 된다. 혼자서 아프리카 침팬지 서식지에 가 연구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자나 표범 같은 맹수들과 마주친 순간은 아찔했다. 그 시절 아프리카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을 생각하면 더욱 위험한 일이었다. 1975년 아프리카 반군이 나이지리아 곰베에서 구달을 돕던 학생 4명을 포로로 잡아가는 사건이 일어났다. 비밀 협상으로 반군에게 거액의 몸값을 지불하고서야 학생들을 구할 수 있었다. 구달의 아프리카 생활은 자신의 꿈에 대한 믿음과 용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침팬지는 녹록지 않은 연구를 지속하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구달을 생각하면 누구나 침팬지를 떠올린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침팬지의 다양한 생활 모습을 전해줬기 때문이다. 침팬지는 밤이면 튼튼한 나무줄기 사이에 나뭇가지를 구부려 얹어 잠자리를 만들고, 보드라운 잎이 많이 달린 나뭇가지를 주워 베개를 만든다.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섬세한 행동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구달은 어느 날 침팬지가 긴 풀잎 하나를 개미굴에 집어넣었다 빼는 걸 목격했다. 침팬지는 풀잎에 잔뜩 매달린 흰개미를 입술로 훑어 씹어 먹었다. 그 풀잎이 꺾이자 침팬지는 작은 나뭇가지를 주워 그것을 사용했다. 이런 구달의 관찰과 발견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인간의 우월함, 즉 ‘호모 파베르(Homo faber)’에 대한 믿음을 깨뜨렸다. 침팬지들은 갖가지 소리와 몸짓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그리고 사람만큼 관계가 중요한 사회생활을 했다.

침팬지에게도 사람처럼 마음이 있다. 보통의 침팬지 수컷은 여덟 살이 되면 어미를 떠나 다른 수컷들과 함께 다니면서 어른이 됐을 때 필요한 것들을 배운다. 구달이 목격한 한 수컷 침팬지는 늙은 엄마를 떠나지 못했다. 아들이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체 주위를 맴돌았다. 절망에 빠진 듯 보였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먹이를 주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3주일 만에 아들도 죽고 말았다. 늙은 엄마가 아들을 독립적인 어른으로 키우지 못했던 탓도 있지만, 엄마를 잃은 침팬지의 애끊는 마음은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구달이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는 이유

201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글로벌 행동 기후 정상회의에 참석한 제인 구달.

201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글로벌 행동 기후 정상회의에 참석한 제인 구달.

이와 같은 영장류의 모습을 세상에 전달한 구달은 탁월한 동물행동학자다. 하지만 구달이 학자로만 살았더라면 나는 그를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구달은 훌륭한 환경운동가이기도 하다. 구달이 1988년 출간한 ‘제인 구달: 침팬지와 함께 한 나의 인생’은 한 소녀가 자신의 꿈을 찾고 세상으로 나아가 그 꿈을 실현해나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종의 자서전이다. 앞선 내용은 이 책에서 가져온 것이다. 구달은 말한다.

“나는 수십 년을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면서 지냈다. 즉, 숲에서 자유로운 야생의 침팬지들과 함께 보낸 것이다. 이제는 돌려주어야 할 때이다. 내가 숲에서 침팬지들과 지냈던, 그 경이로운 시간들에 대해 보답을 할 때가 된 것이다.”
 

제인 구달의 자서전 ‘희망의 이유’

제인 구달의 자서전 ‘희망의 이유’

구달은 침팬지들과 지냈던 경이로운 시간들에 대한 보답으로 침팬지와 동물을 넘어 환경보호까지 나아간다. 그 시작은 침팬지들의 고통에 대한 교감이었다. 1980년대 당시 아프리카에서 침팬지는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25개 국가에 분포하던 침팬지는 이미 4개국에서는 사라졌고, 5개 나라에선 멸종위기에 처해 있었다. 열대우림지역은 점점 줄어들었고, 침팬지들은 식용으로 사살되었다. 새끼들을 잡아 애완용이나 동물원, 서커스단, 의학 연구용으로 팔기 위해 어미들을 죽였다.

구달이 시장에서 만난 새끼 침팬지는 흐리멍덩한 눈을 한 채 철사 우리에 갇혀 있었다. 그대로면 얼마 뒤 죽을 터였다. 구달은 침팬지들이 인사할 때 내는 소리를 냈다. 어미 잃은 작은 침팬지는 가만히 앉아 구달을 쳐다보더니 얼굴을 만지려고 팔을 뻗었다. 침팬지를 사냥하고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이는 멈춰지지 않았다. 구달은 미국 대사와 탄자니아 환경 담당 장관을 찾아갔다. 그리고 결국 환경 담당 장관과 경찰관을 대동하고 가서 침팬지를 구해냈다.
 

1997년 케나 나이로비에서 침팬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구달.

1997년 케나 나이로비에서 침팬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구달.

구달은 인간이 동물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세상에는 지독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 많다. 당연히 그들을 도와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침팬지도, 다른 수많은 동물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동의한다면 동물들의 고통에 당연히 마음을 써야 한다.

침팬지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세상이 바뀌어야 했다. 침팬지들을 구하는 일은 세상을 구하는 일이기도 했다. 침팬지를 위협하는 환경파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역시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런 구달의 생각은 그의 저작 ‘희망의 이유’ 한국어판 서문에서 엿볼 수 있다. 구달에 따르면 지구는 여섯 번째 대멸종의 한가운데 있다. 산소를 공급하는 숲과 서식지는 파괴되고 있고, 지구의 온도는 점점 높아진다. 산업화된 농업은 생물다양성에 큰 위협을 가하고, 산업화된 어업과 공장식 축산 역시 지구 생태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구달은 최근의 코로나19 팬데믹 원인을 동물에 대한 착취에서 찾는다. 사람들이 야생 지역으로 더 깊숙이 들어갈수록 동물과 더욱 밀접하게 접촉하게 되고, 바이러스는 동물에게서 사람으로 퍼진다는 것이다. 구달은 말한다.
 

제인 구달이라는 롤 모델

2007년 미국 뉴저지주에서 열린 라이브 어스 행사에서 발언하는 제인 구달.

2007년 미국 뉴저지주에서 열린 라이브 어스 행사에서 발언하는 제인 구달.

“만약 여러분이 모든 좋은 소식을 주시하기 시작하면 4가지 강력한 희망의 이유를 깨닫게 될 것이다. 바로 놀라운 인간의 두뇌, 자연의 회복력, 젊은이들의 의지와 결단력, 불굴의 인간 정신이다.”

구달이 희망을 품는 까닭은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다. 구달이 관찰한 침팬지는 선하기만 한 존재도, 악하기만 한 존재도 아니었다. 침팬지는 공격적이고 잔인해질 때가 있지만, 동시에 친절하고 애정이 넘쳤다. 구달은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한다. 심술궂고 적의에 가득 차 있을 때도, 친절하고 사랑이 넘칠 때도 있다. 미디어는 끊임없이 나쁜 소식을 전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국가도 숲과 서식지를 보호하고 복원하려 애쓰고 있다.

인간의 두뇌는 복합적인 그 무엇이다. 인간은 놀라운 두뇌로 여러 가지 기술들 발달시켰다. 하지만 이제 그 훌륭한 발명품이 환경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힘쓰고 있다. 다행히 자연은 놀라운 회복력을 갖고 있다. 게다가 적지 않은 젊은이가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 구달은 이러한 일련의 흐름이 가장 큰 희망이라고 말한다.
 

2022년 캐나다 몬타리오주에서 열린 나무 심기 행사에 참석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제인 구달.

2022년 캐나다 몬타리오주에서 열린 나무 심기 행사에 참석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제인 구달.

환경운동가로서 구달의 활동 가운데 특히 주목할 것은 2가지다. 하나는 생태 프로그램이다. 구달은 지구를 살리려는 젊은이들을 돕기 위해 ‘뿌리와 새싹(Roots and Shoots)’이라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 프로그램은 1991년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서 구달이 만난 고등학생들의 작은 모임에서 시작됐다. 젊은이들은 미래의 뿌리와 새싹이라는 의미다. 뿌리는 땅 밑에서 조금씩 자라나 단단한 토대를 만들고, 새싹은 작고 연약하지만 햇빛을 받기 위해 담장도 무너뜨릴 수 있다고 구달은 말한다.

‘뿌리와 새싹’은 1993년 유럽과 미국 등으로 퍼져나갔다. 우리나라에서도 생명다양성재단이 ‘뿌리와 새싹’의 소모임 운영 관리와 지원을 하고 있다. 현재는 50여 개국 수십만 명의 청소년이 국제적으로 교류하는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구달이 지속해온 또 다른 노력은 연구소 활동이다. 1977년 설립된 제인구달연구소는 1994년 ‘탕가니카호 집수, 재산림화, 교육(TACARE)’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은 지역사회 주도로 환경파괴 없이 생존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탄자니아 침팬지 서식지 전역 104개 마을이 협력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한때 벌거벗은 언덕으로 둘러싸였던 곰베 생태계에 다시 숲이 우거지고 있다.

세상에는 훼손된 여성의 인권을 고발하고 젠더 불평등을 해결하는 데 기여한 페미니스트들이 많다. 이들의 담론과 사회운동은 젠더 불평등을 일깨우고 바로잡는 데 작지 않은 역할을 했다.

구달은 자연과학자로서 자신의 삶을 당당히 개척해나가는 모범을 보였다. 구달이 태어난 1934년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쉽지 않은 때였다. 이런 상황에 맞서 구달은 아프리카에서 동물행동학자로 살아갈 거라는 자신의 꿈을 이뤘다. 소녀 시절 품었던 이 꿈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 큰 꿈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침팬지를 구하고, 동물과 인간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이루는 꿈이다.

구달은 다수의 페미니스트 삶과는 결이 다르다. 그는 페미니즘을 앞세우지 않았지만 여성에게도 꿈과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자신의 삶을 당당히 일궈나갔다. 결과적으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살아가는 하나의 롤 모델이 됐다.

나 역시 유독 여성 자연과학자들의 삶에 눈이 많이 간다.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받은 마리 퀴리와 ‘침묵의 봄’으로 현대 생태학을 열었던 레이첼 카슨과 같은 여성 자연과학자들의 삶은 여성 예술가나 여성 정치가 못지않게 주목받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제인 구달이라는 또 한 명의 당당한 자연과학자를 그 목록에 놓아둔다. 

[출처] 여성동아 (2023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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