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경청과 진심 / 최윤석, KBS드라마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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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만남] 경청과 진심 / 최윤석, KBS드라마 PD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나의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성격유형 검사 결과는 ‘INFJ’이다. 중재자, 선의의 옹호자. 전 세계 1.5% 미만을 차지하는 극소수 유형이라고 한다. 17년 전 검사했을 때도 똑같이 INFJ로 나왔으니 요즘 말로는 ‘빼박 인프제’다. 내가 I(내향)라고 밝히면 지인들은 다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한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모임 때마다 이야기를 주도하는 사람이 무슨! 그러면서 한쪽 어깨를 치곤 한다. 

하지만 보기와 달리 나는 실제로 낯을 엄청 가린다. 방구석에 앉아 혼자 있는 시간을 그 어느 때보다 좋아하고, 또 모르는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면 수줍어서 목소리가 덜덜 떨릴 정도이다. 그럼 촬영할 때는 어떻게 하냐고? 수많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시선을 어떻게 견뎌내느냐고? 실은 거기에 대한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    

방송국에 입사해서 만난 A 선배 주위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워낙 사람이 좋은지라 그에 대한 이야기는 미담 밖에 없었다. 게다가 빡센 현장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나를 그는 누구보다 잘 챙겨주었다. 둘만 남은 자리에서 나는 질투하듯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인기가 많은 거예요?”

“칭찬해 주면 돼. 환한 전구에 나방이 꼬이듯 우리는 늘 칭찬을 향해서 날아가니까.”

“에이, 그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그러자 그는 내게 고개를 기울이며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건 말이야. 그 사람의 진짜 장점을 찾아주는 거야.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그런 장점 말고, 너만 찾아낼 수 있는 숨겨진 장점, 심지어는 본인도 모를 수 있는….”

선배의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알듯하면서도 아리송했다.

“네… 그런데 그걸 어떻게 보는데요?”

“그거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오랫동안 지켜보는 거지. 지구가 태양을 돌듯 그렇게 계속 그 사람 주위를 맴돌다 보면 반드시 그 사람의 장점을 발견할 수 있어.”

그래서 그 후 나는 그의 말대로 한번 따라해 봤다. 사람들을 만나면 말투, 습관 그리고 좋아하는 것들을 머릿속에 저장해놓고, 그 사람의 숨겨진 매력을 찾기 위해 유심히 관찰해 봤다. 처음에는 역시 쉽지 않았다. 이런다고 누가 나를 좋아할까? 사람의 매력이라는 건 타고난 게 아닐까? 그런 식으로 의구심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달라지는 게 보였다. A 선배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애정을 쏟은 만큼 날 좋아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연락하는 것 이상으로 연락을 줬고, 내게 경조사가 있으면 누구보다 빨리 찾아와 진심으로 나를 응원하고 또 위로했다. 그저 주의 깊게 지켜봤을 뿐인데 조금 더 많은 사람을 얻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말하는 것보다 먼저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 차곡차곡 쌓은 상대방의 데이터를 ‘진심’이라는 시선으로 따뜻하게 바라보는 것,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하지 말고 그때그때 담백하게 말하는 것이 그동안 내가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알게 된 노하우였다. 한 가지 팁이 있다면 A 선배의 말처럼 누구나 아는 칭찬은 잘 안 하려고 했다. 눈이 예쁜 배우에게 눈이 예쁘다는 말, 발성 좋은 배우에게 목소리가 멋지다는 칭찬은 차별성이 없으니까. 내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에게 귀가 닳도록 들었을 게 분명했다. 되레 나는 그들이 갖고 있는 숨겨진 재능에 집중했다.

“너는 목소리 끝에 힘이 있으니까 귀에 쏙쏙 박히네. 다큐 내레이션을 해도 잘할 것 같아.”

“이런 디테일한 생활 연기는 내가 볼 때 우리나라에서 너밖에 못할 거 같네.”

물론 감언이설(甘言利說)을 하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마음에 없는 칭찬 혹은 억지로 지어낸 조악한 칭찬은 안 하느니 못하니까. 또한 상대방을 진정 위한다면 입에 발린 칭찬보다 애정 어린 조언 혹은 따끔한 충고가 때론 더 필요하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이왕 할 거면 같은 말이라도 조금 더 예쁘게 말하면 좋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갓 지은 햇반처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런 말을 그리워하니까. 

이렇게 상대방을 내 편으로 만드니 모임에 가서도, 촬영 현장에서도 나는 긴장하지 않고 내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내 편이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가족과 연인에게 말할 때 목소리가 떨리는 사람을 본 적이 있나? 모든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를 보며 눈을 반짝이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INFJ ‘빼박 인프제’는 만남을 조금 더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사진. 김신영 편집장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신문방송학과 졸업. 드라마 <추리의 여왕2><김과장><그놈이 그놈이다><정도전><어셈블리><즐거운 나의 집> 등 연출. 美 휴스턴 국제영화제(WorldFest-Houston International Film Festival)에서 대상 및 금상 수상.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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