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발자국] 행복한 11살입니다 / 박서휘,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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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첫발자국] 행복한 11살입니다 / 박서휘, 아나운서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첫발자국


행복한 11살입니다


박서휘, 아나운서


지난가을, 8시 생방송을 마치고 회사 근처 카페에 들어와 가장 푹신한 자리를 골랐다. 탁자에 앉아 창밖을 보니 출근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한 겹 더해졌다. 저 멀리서 북악산이 나를 반겼다. 52년 만에 시민들에게 개방된 북악산 둘레길, 그 소식을 시청자들에게 생생하게 전하고자 올해만 서너 번 방문했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북악산의 위치도 잘 몰랐던 나는 이제는 가장 좋아하는 산은 북악산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올해는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참 많아졌다. 매주 출근길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고, 주말에는 여러 장소를 방문해 소식을 전하는 나의 일. 덕분에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장소들도 만나지 못할 사람들도 정말 많이 만났다. 새로움, 도전, 처음을 마주할 때 가장 희열을 느끼는 내게는 최고의 직업이 아닐까. 늘 새로움을 맛볼 수 있게 해주는 연합뉴스TV에게 감사한 마음이 가득하다. 

올해 감사한 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연기’라는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것. 10년여 동안의 방송 생활에서 감정은 드러내는 것이 아닌 감춰야 하는 것이었다.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하기에 내면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 왔다. 그러다, 연기에 도전하며 ‘희로애락 표현하기 수업’에 참여했는데, ‘로’를 표현하는 데만 1시간이 넘게 걸렸다. ‘분노, 화’라는 감정과 마주하는 게 겁이 났고, 이를 타인 앞에서 표현하는 건 더더욱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렵게 처음 내 감정을 마주하고 끄집어내자, 왠지 모를 후련함과 스스로와 가까워진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나’와 친해지다 보니 어느덧 4개월간의 첫 연극 공연 기간이 끝났고, 이제 두 달 뒤면 새로운 연극이 시작된다. 첫 연극에서는 로맨스 코미디 작품의 첫사랑 역할을 맡았다면 두 번째 도전은 아픔이 가득한 17살의 소녀를 연기하게 됐다. 초연이라 정답이 정해지지 않았다. 텍스트에 스토리와 생명을 불어넣는 일. 30대 내 첫 도전은 오늘도 나를 두근거리게 한다.

어린 시절의 난 항상 ‘왜? 어떻게? 그리고?’라는 질문을 달고 살았다. 배우고 싶은 게 있다면 직접 찾아가 배움을 요청했고 알고 싶은 게 있다면 몸소 체험하며 알아갔다. 그중 태권도는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 해 공인 4단이 되었고, 악기는 두어 개, 취미도 여러 개 남았다.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 발레, 바이올린, 수영 등도 있다. 그래도 좋다. 덕분에 나와 더 잘 맞는 것들을 알게 됐고, 작은 경험들이 쌓여 방송의 이야기 소재와 연기할 인물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밑거름이 되어주었으니까.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던 나는 여느 학생들처럼 성인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스무 살이 되던 2012년 1월 1일 일기장에 삶의 목표를 적었다. “매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 스무 살부터 해마다 한 가지씩 도전하면 70대에는 무려 50가지가 넘는 분야를 경험해 볼 수 있다. 그 경험이 인생을 좌지우지할 일생일대의 경험이 될 수도 있고, 지나서 돌이켜보면 미소 지을 아담한 추억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확신한다. 어떠한 도전이든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들은 분명 의미 있을 것이라는 걸. 

매년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로 한 스무 살부터 인생 나이를 세기로 했다. 그러므로 난 열 한 살이다. 아직 호기심도 많고 꿈도 많은 열한 살. 걸그룹, 스포츠 아나운서, e스포츠 아나운서, 잡지 에디터, 피트니스 선수, 사업가, 라디오 DJ, 뉴스캐스터에 올해는 배우 한 스푼을 더했다. 그간의 경험들은 건강하고 탄탄한 이립의 나를 만들었다. 배우는 경험이 많을수록 좋다고 하던데, 나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재료들을 얻은 셈이다. 

나는 실패가 결코 두렵지 않다. 실패가 있어야 성공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내 좌우명은 “삽질 많이 하기.” 말 그대로 일단 삽을 들어봐야 어떻게 하는지, 어느 땅을 파야 좋을지 알아갈 수 있다. 땅에 금덩이가 묻어있는지는 아직 중요하지 않다. 땅을 팠는데 아무것도 없어도 괜찮다. 땅을 파다가 비가 올 수도, 삽이 부러질 수도,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 다 괜찮다. 또 파면 된다. 단번에 보물을 발견하지 못해도 삽질을 했던 그 경험은 또 다른 삽질을 할 수 있는 힘과 노하우가 될 것이다. 그렇게 언젠가 땅속 보물을 발견했을 때 그 가치를 알고 소중함과 감사함을 온전히 느끼고 싶다.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나는 한결같이 대답한다.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세계 영향력 있는 100인 안에 이름을 올리고 싶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경험하며 더 많은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목소리도 함께 낼 수 있는 그런 사람.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마음으로 공감하며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귀감이 되는 사람이 반드시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더 많이 부딪히고 또다시 일어서고 힘차게 달리기를 수없이 반복해야 할 것이다. 참 다행이다. 나는 아직 열한 살이라서.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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