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원치 않는 만남의 소중함 / 정우현, 분자생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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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만남] 원치 않는 만남의 소중함 / 정우현, 분자생물학자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만남

 

원치 않는 만남의 소중함

 

정우현, 분자생물학자·덕성여대 교수

 

최근 생명의 의미와 가치를 다룬 책을 한 권 출간하고 나니 몇 가지 소소한 변화들이 생겼다. 그중 기분 좋은 한 가지는 낯모르는 일반 독자로부터 생명을 바라보는 나의 개인적 의견을 묻는 연락을 종종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학술 논문을 쓸 때는 이런 적이 없었다. 논문에는 나의 사사로운 의견을 집어넣을 일이 없다. 과학계에서 널리 쓰이는 방법론을 통해 연구 결과를 제시하고, 누구나 인정할 만한 결론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이라는 것이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의견과 동떨어져 수행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새삼 느끼게 된다.

얼마 전에는 한 고등학생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태아의 유전자 편집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데 왜 원하는 유전자를 골라 아기를 낳을 수 있게 하는 정자은행은 허용하느냐는 것이었다. 최근 방송에서 한 연예인이 백인 남성의 정자를 기증받아 아들을 낳은 ‘비혼(非婚) 맘’이 되면서 화두가 된 사례를 두고 묻는 듯했다. 아기를 간절히 원하는 불임부부나 성 소수자 커플처럼 불가피한 경우도 아니면서, 상대를 사랑하지도 않는데 원하는 유전자만 골라 아기를 가져도 좋으냐는 이야기였다.

 

유전학은 얄궂다. 상대방이 가진 외모나 지성, 혹은 성품이 마음에 들어 결혼해 아기를 낳더라도 꼭 그를 닮은 아기가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아인슈타인의 지성미에 반한 마릴린 먼로가 예쁘면서도 똑똑한 아기를 갖고 싶어 그에게 은밀히 프러포즈를 했다던가?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그 반대로 자신의 외모를 닮고 먼로의 머리를 닮은 아기가 나올지도 모른다며 거절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실제로 부모가 자신들이 기대하던 자식을 예상대로 갖는 경우는 드물다. 후손에 전달되는 유전 현상이란 우리의 계산보다 훨씬 복잡할 뿐 아니라 다 이해할 수도 없어 신비하기까지 하다. 멘델이 발견한 완벽한 유전의 법칙은 완두콩에서나 들어맞는 단순한 수식에 불과하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남녀가 만나 함께 다음 세대의 자식을 만드는 유성생식의 과정에서 불가피한 일이다. 박테리아처럼 무성생식을 한다면 누구나 자신과 똑같이 닮은 자식을 낳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생명은 박테리아의 수준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고등 생물로 진화하여 불확실한 자식을 만들 수밖에 없는 유성생식을 선택했다. 자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누군가를 ‘만나야’ 하고, 그 만남은 필연적으로 ‘불확실한’ 후손을 낳게끔 되어 있다. 언제든 나의 예상과 전혀 다른 아기가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본래 유성생식의 목적 자체는 생명으로 하여금 급변하는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할 수 있게 하는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자식을 여럿 다양하게 만들다 보면 그중 하나는 건강하게 잘 살아남을 거라는 믿음에서 나온 진화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유전자 편집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고의적으로 불확실성과 다양성을 거부하는 선택이다. 당장은 내가 원하던 바로 그 유전형질을 얻게 되어 기쁠지 모르나, 후에 환경이 바뀌면 그것이 어떤 위험이나 불이익으로 다가올지 알 수 없다. 이것은 비단 생물학적 위험성뿐 아니라 윤리적인 문제도 야기한다. 자식의 유전적 조건을 설계하려는 것은 자식의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생을 통제하려는 오만하고도 부도덕한 행위가 될 수 있다.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자식을 낳을 때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존재를 향한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좋은 것만을 골라 선택하려는 욕망을 포기하고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를 하늘에서 내려준 ‘선물’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바라볼 때 그것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성찰과 결단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자세는 단지 배우자를 만나고 자식을 낳을 때만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원치 않는 사람과 함께 일해야 하거나, 원치 않았던 상황 또는 불행한 사건과 맞닥뜨려야 하는 일은 우리가 살아가는 내내 반복된다. 원치 않는 만남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꽃길만 걸으려 계산하기보다는, 이를 예기치 못했던 일을 경험할 소중한 기회로 재해석해 보는 건 어떨까. 그것이 우리의 ‘불확실성’과 ‘다양성’ 때문에 일어나는 일인 한, 그것은 얼마든지 우리를 더 잘 적응하고 성장하게 만들 수 있다.

 

 

*1974년 출생. 서울과학고등학교 졸업. 서울대 미생물학과 학사 및 석사, 동 대학원 생명과학부 박사. 美 MD 앤더슨 암센터, 베일러 의대에서 암 생물학과 분자유전학 연구. 저서로는 <생명을 묻다>(2022). 現 덕성여대 약학과 교수.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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