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窓] 나를 위한 향기 /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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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박성희의 窓] 나를 위한 향기 /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박성희의 窓-38회 


나를 위한 향기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


커피 가게 옆 엘리베이터는 커피 냄새를 실어 나른다. 출퇴근 길, 주차장으로 이어진 엘리베이터에서 고소한 커피향을 맡을 때마다 나는 석가모니의 법문에 나오는 ‘향을 쌌던 종이’를 떠올리곤 한다. 향을 쌌던 종이에서는 향냄새가 나고, 생선을 묶었던 새끼줄에서는 생선 비린내가 난다. 어떤 물건이든 처음에는 깨끗했지만 모두 인연을 따라 죄와 복을 짓는다는 가르침이다. 석가의 가르침대로라면 엘리베이터는 카페라는 좋은 친구를 옆에 둔 덕에 매일 승객을 기분 좋게 하는 복을 짓는 셈이다.

좋은 냄새는 늘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갓 구운 빵 냄새가 진동하는 빵 가게, 싱싱한 풀 내음이 가득한 꽃 가게는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행복하다. 요즘에는 이런 고객의 기분을 이용한 향기 마케팅도 활발하다. 새 차에 가죽 향을 입혀 새 차의 느낌을 배가하고, 책방에는 머스크향을, 병원 대기실에는 소나무 향을 분사해 고객의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식이다. 백화점 1층에는 화장품 못지않게 세계 각국의 향수 제품이 입점해 있는데, 우리가 이렇게 다양한 향기에 관심을 갖게 된 걸 보면 확실히 살림살이가 나아졌나 보다. 


나는 비교적 일찍부터 향수를 뿌렸다. 미국에 처음 갔던 18살 무렵 나를 돌봐주시던 고모가 계셨는데, 고모는 내가 외출할 때마다 혹여 김치 냄새라도 난다는 소리를 들으면 안 된다며 향수를 뿌려주시곤 했다. 그 고모는 검은 병에 든 일제 시세이도 향수를 애용하시곤 했는데, 나는 지금도 그 향기를 고모 냄새로 기억한다. 아무튼 고모가 나에게 향수를 뿌려준 건 순전히 나의 사회생활을 위해서였다. 

어릴 적 습관이 오래가듯, 한국에 돌아오고 김치 냄새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 후에도 나는 여전히 향수를 뿌린다. 세수하고 옷을 입듯 자연스럽게 향수를 애용하다 보니 외출하기 전에 향수를 뿌리지 않으면 뭔가 빼먹은 느낌이 들 정도다. 그동안 써본 향수의 종류도 수 십 가지는 될 것 같다. 

좋아하는 향도 그때그때 변한다. 어려서는 좀 성숙한 향을 선호했다면 나이가 든 지금은 상큼한 향을 더 좋아한다. 계절이나 날씨, 그날의 기분이나 옷의 분위기에 따라서도 어울리는 향수가 각기 다르다. 여름에는 싱싱한 풀 향기가 들어간 식물성 향수가 어울리고, 정장 차림을 할 때에는 좀 묵직한 향기가 낫다. 향수는 옷에 뿌리는 것이 아니라 피부에 뿌린다. 향수는 나의 체취와 합쳐져서 최종 향기를 발산하기 때문이다.


시작은 남을 위한 향수였지만, 갈수록 나는 향수가 나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끔 집에서 혼자 일을 하다 기분을 상승시키고 싶을 때 향수를 살짝 뿌리면 정신이 든다. 기분을 전환시키고 싶으면 향수가 들어간 아로마 비누로 샤워를 한다. 또 선물로 받은 향초를 켜서 방안을 향기로 채우기도 하는데, 이런 걸 아로마 테라피라고 살롱 같은 데서 돈을 받고 해주는 데도 있다고 한다. 

내 방에는 애플민트 화분이 하나 있는데, 공연히 다가가서 이파리를 쓱 만지면 민트향이 전해져 기분이 좋아진다. 모두 순전히 나를 위한 향기이다. 남에게 나의 냄새를 감추기 위한 향수가 아니라, 나 스스로 기분 좋아지기 위한 향기이다. 이런 향기를 몸에 감고 있으면 주변에도 그 향이 전해지지 않을까. 마치 향을 쌌던 종이처럼.

부처님은 선한 사람을 가까이하면 그 사람의 향에 물든다는 가르침을 주셨지만, 그 향은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물들인다. 선한 일을 하면 자기가 먼저 기분이 좋아지니, 선행이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이기적으로, 더욱 선하게 살아도 될 것 같다. 

아무튼 오랜 기간 향수를 즐겨 쓴 덕분에 나도 ‘향기로운 사람’으로 기억될 듯하다. 언젠가는 아들이 어떤 향수 냄새를 맡더니 대뜸 ‘아, 엄마 냄새다’라고 하더니, 딸은 ‘이거 엄마한테 어울린다’라며 향수를 선물하기도 한다. 향수의 힘을 빌려서라도 향기로운 엄마가 되고 싶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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