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을 살다 그 두 번째 이야기](1)남극과 코로나19 그리고 아라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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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
[남극을 살다 그 두 번째 이야기](1)남극과 코로나19 그리고 아라온호
  • 출판사경향신문사
  • 잡지명주간경향

“원래 후기 같은 건 얼렁뚱땅 안 쓰고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우리 편집장님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더라. 그래서 후기를 쓰기 시작. 과연 이것을 누가 볼까, 생각도 하고 사실 처음엔 회의감도 좀 들었다. 어차피….” 2020년 12월 26일 남극장보고과학기지(장보고기지)를 출발해서 남극세종과학기지(세종기지)를 경유해 2021년 3월 18일 한국으로 돌아온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에서 ‘눈나라얼음나라’ 9호를 제작할 당시 최봉수 생물대원의 푸념입니다. ‘눈나라얼음나라’는 두 기지 월동연구대의 월동 기간 연구와 기지 생활 등을 소개하는 웹진입니다. 장보고기지 7차 월동대의 활동상을 담은 ‘눈나라얼음나라’ 9호는 83일간 망망대해를 헤치고 고국에 돌아온 아라온호에서 만들었습니다. 코로나19 이전 같으면 기지 출발 전 웹진 제작을 이미 끝내고, 비행기를 타고 편안하게 귀국했을 상황이었습니다.
 

아라온호 / 극지연구소 제공

아라온호 / 극지연구소 제공



아라온호와 월동대, 83일간의 여정

코로나19는 남극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통상 월동대원들이 한국에서 출발해 남극기지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려면 대략 13개월이 걸립니다. 한국과 남극 간 이동을 비행기로 하기 때문에 이동 기간이 짧은 겁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월동을 했던 장보고기지 7차 월동대는 ‘한국 출발→남극 월동→귀국’까지 무려 17개월이 걸렸습니다. 이동하는 데만 약 3개월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극지연구소는 남극 활동 참가자들의 안전 확보와 연구의 연속성 유지, 월동대 교체 등을 위한 방법을 고민한 끝에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극지 연구와 기지 보급에 빼놓을 수 없는 아라온호는 과거 남극해에서 한국 어선을 포함한 해외 선박 구조에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극지 활동자들의 안전 위협과 연구의 축소·단절 등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극지 연구를 위협하는 여러 어려운 고비도 아라온호가 있었기에 성공적으로 넘을 수 있었습니다. 극지 연구 활동에서 쇄빙선이 필요한 이유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셈입니다.

당시 아라온호는 2020년 10월 31일 광양항을 출항한 이후 12월 장보고기지와 세종기지를 경유해 월동대 교체 등 활동을 마친 후 138일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라온호에 오르면서 귀국길에 오른 7차 월동대원들의 경우 14개월간의 기지 생활에 더해 83일이라는 긴 여정까지 마친 것입니다.

남위 74.6도의 장보고기지 주변 바다는 3월부터 얼기 시작해 10~11월에 1.5m 이상 두꺼워집니다. 민간·군용 대형 항공기가 극지 활동자들과 보급 물자를 실어나르는 천연 활주로로 이용합니다. 비행기로는 5~7시간이면 남극에서 뉴질랜드나 호주로 이동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날씨가 변덕을 부리거나 간헐적인 비행기 고장 등으로 일정이 연기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면 해빙이 갈라지고 약해지는 12월 초가 되면 아라온호를 기지의 첫 번째 보급과 인력 교체에 활용합니다. 아라온호는 이동에 8~10일 걸리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당시에도 월동 초 귀로 여정의 시작으로 아라온호가 어떻겠냐고 대원들에게 농담을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그 말이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실현됐습니다. 가족과의 재회가 늦어지고, 험한 남극해를 그것도 기지에 비해 매우 좁은 공간에서 항해하는 것이 무척 걱정되고 힘들 것으로 생각한 일부 대원들(특히 4인 1실 이용 대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종기지, 칠레, 적도를 거치는 항해는 극지연구소 연구자를 포함한 거의 대부분이 경험할 수 없는 귀중한 추억이 될 수 있기에 대원들은 주저없이 그 83일의 항해에 동참했습니다. 힘든 월동 활동을 마치고 본인만의 시간을 즐긴 대원들도 있지만, 일부 대원들은 아라온호에서의 연구 활동을 자발적으로 도왔습니다. 특히 이창범 기관정비대원(해양경찰청 소속)은 빙어낚시 경험을 십분 살려 잡기 어렵다는 남극 빙어와 문어를 낚기도 했습니다. 비법은 ‘고패질’이 아닌 ‘챔질’이라 합니다. 이동과 연구시간에 쫓겨 낚시는 기상이 나빠 연구 활동을 못 하는 시기에만 허용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낚시의 면목을 보여줬으니 그는 진정 바다인인가 봅니다. 기지 활동 당시 엄청난 연구 활동으로 같은 부서 연구원들의 신망을 얻었던 주형민 해양대원은 아라온호에서도 마찬가지로 연구 활동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또한 월동 전 동료들의 “형민아, 너 월동 끝나면 비행기 타고 귀국하지 말고 아라온호 타고 같이 한국 가자”는 말이 실현될 줄은 몰랐을 겁니다. 이런 특수 상황의 경험을 마지막 웹진에 담는 게 좋을 것 같았고, 의욕 충만한 편집장 임세준 통신대원은 지난 8번의 제작 기간 동안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남극장보고과학기지와 아라온호 / 극지연구소 제공

남극장보고과학기지와 아라온호 / 극지연구소 제공



장기간 흔들리는 배에서 일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때문에 최봉수 대원(편집위원 겸)은 처음엔 탐탁지 않게 참여하는 듯했습니다. 필자의 경우 승선하자마자 대기 관측 업무를 시작했는데, 항해가 길어지다 보니 월동 활동마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원들에게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차에 원고 요청이 와 지난 호들을 읽으면서 우리가 했던 일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제한된 공간에서 대원들만 달라졌을 뿐인데 이전과 다른 많은 이야기가 녹아 있었습니다. 대형 이글루를 만들거나 눈썰매장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던 기억, 강추위 속에서 취수구 작업을 하거나 백두봉을 등반했던 일…. 그 속에서 함께 웃었던, 때로는 힘들었던 순간을 함께한 대원들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이 지면을 통해 7번째 장보고기지의 월동 활동을 다시 소개할 수 있어 최봉수 대원에게 덜 미안합니다. 7차 월동 요약으로 이번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역대 기록 쓴 월동대 “임무 수행 완료”
 

18명으로 구성된 장보고기지 제7차 월동대는 특별한 월동 기간을 보냈습니다. 우선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월동 기간이 역대 가장 긴 약 14개월(2019년 11월~2020년 12월)이었습니다. 기지 운영 이래 최초의 기지 사찰이 호주와 미국 기관에 의해 2차례 있었습니다. 1988년 시작한 세종기지의 월동 이래 한국 기지에서 최초로 급성충수염(맹장염) 환자가 발생해 뉴질랜드로 안전하게 후송한 일도 있었습니다. 기지 운영 이래 역대 최고 순간 풍속(초당 46.2m, 비공식)과 최저기온(-38.3도) 그리고 동계기간 최고기온(2.4도)을 기록했습니다.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의 2차례 해빙 하역, 2차례 해상 하역 등 쉽지 않은 임무도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최장 귀국 여정(83일). 이 모든 것을 담은 ‘눈나라얼음나라’ 9호와 월동보고서 작성을 끝으로 미션 완료! 

[출처] 주간경향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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