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手作] 오랜 시간 곁을 지키며 / 유희송, 도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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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교양
[재미난 手作] 오랜 시간 곁을 지키며 / 유희송, 도예가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현관문을 들어서서 거실과 부엌을 지나 나의 방에 이르기까지, 집 안을 찬찬히 둘러보면 시선이 닿는 구석구석 익숙하고 정겨운 사물들이 있다. 작업을 시작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우리 집은 어느새 공예가가 만든 사물들로 채워져 있다. 직접 만든 도자기는 물론이고 친한 작가님들 혹은 혼자 조용히 선망하는 작가님들의 작품들까지 마음에 드는 사물들을 하나씩 하나씩 집으로 들였더니 어느새 일상 속에서 공예품을 사용하는 삶이 당연해졌다. 

공예가가 신경 써서 잘 만들어낸 사물들은 쉽게 망가지거나 질리는 일 없이 긴 시간 내 곁을 지킨다. 같은 사물을 아침 햇살과 저녁노을 빛에 비추어 바라보고, 짙푸른 나뭇잎이 넘실거리는 한여름의 창 앞과 함박눈 내리는 회색빛 겨울의 창 앞에도 놔둔다. 나는 이렇듯 아름다운 사물을 곁에 두고 오래 바라보며 정을 주는 일을 좋아한다. 잘 만들어진 사물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 사물을 일상적으로 바라보고 다루는 경험까지 아름답게 한다. ‘좋은 공예’는 만드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생활 속에서 공예적 경험을 하는 데까지 확장된다.

잘 만들어진, 그리고 내가 아끼는 사물을 일상 속 가까이에 두고 사용할 때 얻는 만족감과 이러한 공예적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은 나에게 창작욕을 불러일으키고 더 좋은 작업을 하고 싶게 만든다. 그런데 하나의 도자기를 온전하게 완성해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적당한 습도로 흙을 반죽하는 과정부터 물레를 차서 형태를 빚어내고, 유약을 바르고, 마침내 가마를 때기까지는 최대한 간추려 생각해 봐도 예닐곱 개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최대한 짧게 생각해 봐도 열흘가량의 시간이 필요하다. 

흙은 정말 정직한 재료여서 반죽부터 정형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주어진 힘을 모두 기억하고 있고, 이 흔적들은 흙이 건조되면서 혹은 고온에서 소성되면서 모두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나의 과정이라도 대강 허투루 지나가면 다음 과정에서 분명 문제가 생긴다. 한편 흙이 갈라지지 않고 잘 마르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1280℃ 안팎의 고온까지 치솟았던 가마의 내부도 천천히 식어야 안에 담긴 도자기가 깨지지 않는다. 결국 모든 과정을 꼼꼼하게 챙겨 만져진 흙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불을 만나고 나와야 도자기가 온전하게 완성된다. 도자기를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은 이토록 헌신적이다. 나는 매일 매시간 흙의 상태를 살펴보며 한 단계씩 작업을 이어가는데, 이때 모든 단계마다 형태와 무게, 색감 등에 관하여 수많은 선택을 하고 이에 따라 결과물은 다양한 모습으로 완성된다. 도자기를 완성하는 과정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나는 일상생활 속에서 내가 공예품을 다루며 축적한 경험과 스스로 가꿔온 취향에 따라서 보다 사용하기 좋고 아름다운 기물을 만들기 위한 선택을 한다. 더 개인적으로는 나의 식습관에 맞는 그릇을 만들고, 내가 꽃을 좋아하니 화병을 만드는 등 나의 생활방식에 따라서 어떤 기물을 만들지 선택하기도 한다. 이렇듯 삶을 살면서 쌓아온 좋은 기억과 감각적인 경험, 그리고 나의 생활 자체가 자연스럽게 작업에 반영된다. 완성된 작품은 필연적으로 작가를 닮는다. 그러니 좋은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나의 생활이 건강해야 하고 좋은 풍경과 사물을 자주 접하며 안목을 길러야 한다. 이는 곧 처음으로 돌아가, 좋은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결국 공예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같다.

작업 과정이 워낙 성실함과 헌신을 요구하기 때문인지, 도예가의 생활은 참 단순하다. 아침에 일어나 가벼운 운동을 하고 작업실로 나간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물레 앞에서 보내고 퇴근길 교통체증이 다 풀린 후에야 한강의 야경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온다. 단순한 일상에 재미와 때로는 감동까지 주는 것은 출퇴근길, 산책길에 마주하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풍경들에 있다. 계절별로 변하는 풍경과 시간대마다 다른 하늘의 색깔, 날씨에 따라 달라 보이는 한강의 물결 등 매일 같은 풍경을 마주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복되는 풍경은 결코 없다.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면 미묘한 차이가 보인다. 

공예품을 바라보는 것도 이와 같다. 눈길과 손길을 더 많이 받을수록 공예품은 더 많은 즐거움을 주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히려 더 특별해진다. 내가 만든 도자기가 나의 일상 속에서 그러하듯, 다른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도 오랜 시간 그들 곁을 지키며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하고, 많은 추억과 감동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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